기독교/생각(Thinking)

[기독교] 성경 - 마가복음 15장 1-15절

seek 2026. 3. 29. 22:23

성경 - 마가복음 15장 1-15절

[1] 새벽에 곧 대제사장들이 장로들과 율법학자들과 더불어 회의를 열었는데 그것은 전체 의회였다. 그들은 예수를 결박하고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2]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그러자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대답하셨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였소.” [3] 대제사장들은 여러 가지로 예수를 고발하였다. [4] 빌라도는 다시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아무 답변도 하지 않소? 사람들이 얼마나 여러 가지로 당신을 고발하는지 보시오.” [5] 그러나 예수께서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상하게 여겼다. [6] 그런데 빌라도는 명절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 주곤 하였다. [7] 그런데 폭동 때에 살인을 한 폭도들과 함께 바라바라고 하는 사람이 갇혀 있었다. [8] 그래서 무리가 올라가서, 자기들에게 해주던 관례대로 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9] 빌라도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그 유대인의 왕을 여러분에게 놓아주기를 바라는 거요?” [10] 그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주었음을 알았던 것이다.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무리를 선동하여, 차라리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12] 빌라도는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그 사람을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요?” [13] 그들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14]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정말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일을 하였소?” 그들은 더욱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15] 그리하여 빌라도는 무리를 만족시켜 주려고,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한 다음에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넘겨주었다. (마가복음서 15:1-15 새번역)

 

마가복음 15장의 재판 현장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대제사장들은 시기심에 눈이 멀어 자신들의 권위와 기득권이 흔들릴까 두려워 예수를 제거하려 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긴다 자부했으나, 정작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명예를 지키려 진리를 외면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소요와 민심을 두려워해 자신의 안위를 선택했다. 그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위치에 있었으나 그 판단을 관철할 용기는 없었다. 결국 그는 책임을 회피한 채, 침묵하는 예수님을 광기 어린 군중의 손에 넘겨주었다.

군중들은 비판적 사고 없이 대중의 흐름에 휩쓸렸다.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기보다 그저 더 큰 소리에 동조했다.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분위기에 반응했고, 선동에 쉽게 흔들리며 무죄한 이를 향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처음에 나는 그들을 비판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일그러진 모습 속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때로는 대제사장들처럼, 내가 쌓아온 것과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외면했고, 내 생각과 다른 목소리가 들릴 때면 그것이 옳은지 고민하기보다 나를 정당화하기에 급급했다.

어떤 순간에는 빌라도처럼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불이익이 두려워 비겁한 침묵을 선택하고 편한 쪽으로 타협했으며

군중들처럼, 깊은 생각 없이 분위기와 흐름에 따라 판단할 때도 많았고, 내가 직접 고민하고 책임지기보다 시류에 편승해 다수의 목소리 뒤로 숨기도 했다.

심지어 이러한 자기 중심적인 모습은 타인뿐 아니라, 내가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족과의 관계 안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만약 내가 그 재판 현장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수십 번을 되물어도 대답은 같다. 나 역시 그들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며, 어쩌면 그 소란을 피해 조용히 도망쳤을 것이다. 결국 그들뿐만 아니라 나도 똑같은 악당이다.

이러한 악당들 앞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전지전능한 신적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셨다. 물 위를 걷고 폭풍을 잠잠케 하시며,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조차 살리셨던 분이, 악당들의 비겁한 고발 앞에서는 마치 아무런 힘도 없는 자처럼 침묵하셨다.

만약 내가 예수님이었다면, 그들을 모두 제거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악을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권능을 내려놓으심으로 우리를 살리는 길을 택하셨다. 힘이 없어서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스스로 그 능력을 제한하셨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그 무력함의 길을 걸어가셨다.

나는 신앙생활하면서 수 많은 고백과 결단을 반복 해왔다. 내 인생은 오직 예수 한 분으로 충분하다고, 이제는 죄짓지 않고 사랑하며 살겠다고 베드로처럼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결단은 오래가지 못했고 반복해서 무너졌다.

그래서 나는 내 미래도, 당장 내일의 내 결심도 장담할 수 없다. 나는 또 타협할 것이고, 또 비겁하게 숨을 것이며, 또다시 십자가를 외면하는 악당의 모습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디모데후서 2:13 말씀 처럼, 나는 나 자신을 장담할 수 없는 미쁨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내가 아닌 나를 끝까지 붙드시는 신실하신 그분만을 장담할 수밖에 없다.

이사야 41:8-10 약속대로, 나의 결단은 매번 실패해도 나를 붙드시는 그분의 결단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수없이 그분을 놓치는 동안에도 그분은 의로운 오른손으로 나를 단 한 번도 놓지 않으셨기에, 내가 오늘 이 고백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면, 나라는 인간에게는 정말 답이 없다. 이렇게 답 없는 인생을 십자가에서 피흘림으로 장담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오늘도 다시 그 사랑을 의지해 살아간다.

ㅡ 기도 ㅡ
주님, 재판석의 군중 속에서 도망치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옳고 그름을 알면서도 손해가 두려워 입을 닫았고, 깊은 생각 없이 다수의 목소리 뒤로 숨어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주님, 인정합니다. 저는 답이 없는 악당입니다. 오랜 신상생활의 세월도 고치지 못한 이 반복되는 죄성 앞에서 저는 저의 내일조차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폭풍을 잠재우고 죽은 자를 살리던 그 손으로 저를 위해 스스로 결박당하신 예수님을 봅니다. 악당들을 제거하는 대신 그들의 죄를 당신의 몸으로 다 받아내신 그 '무력한 사랑'이 저를 살렸음을 믿습니다.

제가 수없이 주님을 놓치는 순간에도 저를 놓지 않으신 주님의 손을 의지합니다. 제 결단은 실패해도 저를 향한 주님의 결단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음을 믿기에, 오늘 다시 그 은혜 앞에 저를 맡깁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제 삶의 유일한 답입니다.

제 결심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살고 싶습니다. 타협하고 싶을 때, 침묵하고 싶을 때, 흐름에 그냥 따라가고 싶을 때, 저를 대신해 십자가로 가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해주세요. 그 사랑이 제 삶의 선택의 기준이 되게 해주세요. 오늘도 저를 붙들고 계신 주님을 믿습니다.

신실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