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4편 10-23절
시편 104편을 읽다 보니, 하나님의 창조가 마치 개발자의 개발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앱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은 모두 개발자의 목적과 의도 아래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개발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프로그램 내에 규칙과 논리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개발자가 만든 프로그램은 결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버그와 오류가 발생하고 지속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편 104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기초를 세우시고,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않게 하시며, 달과 해로 때를 구분하셨다. 이는 온 세상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와 법칙 안에서 운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치 하나님께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알고리즘으로 우주라는 거대한 프로그램을 만드신 것 같다.
태양계의 질서와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밤과 낮의 반복, 물의 순환, 생태계의 흐름은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창조 질서로,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로운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시편 104:24)
실력이 뛰어난 개발자의 코드에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패턴과 철학이 담겨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 세계의 정교함과 아름다움 속에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드러나 있다.
새들이 깃드는 우거진 나뭇잎, 산양과 오소리의 서식지, 바다를 유영하는 수많은 생물들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모든 피조물 속에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이 명백한 증거로 깃들여 있기 때문에, 어떤 피조물도 결코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프로그램이 자신을 만든 개발자를 부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이처럼 모든 피조물 속에는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이 분명히 드러나 있으며, 이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시편 104:28-29)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손 놓고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도 이 세상을 실시간으로 관리하시며 모든 생명체의 생명줄을 쥐고 계신 최고 관리자로 묘사할 수 있을 것 같다.
피조물의 관점에서 생존은 스스로의 능력에 달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공급과 섭리에 의존하고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이 손을 펴시면 생명이 번성하고 만족을 누리지만, 얼굴을 숨기시고 호흡을 거두시면 곧바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피조물의 한계이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전적으로 이 세상을 설계하고 창조하신 하나님의 주권 아래 놓여 있다.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시편 104:33)
그래서 시편 기자는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찬양하는 것 같다.
"죄인들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들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시리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 (시편 104:35)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결국 죄와 악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그분의 공의로 심판하셔서 창조 질서를 바로 세우실 것을 고백한다.
이 세상에 '죄'와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창조주가 처음부터 설계를 잘못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게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정해진 대로만 움직이는 기계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과 친밀한 관계와 교제를 나누기 위해,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즉, 죄악은 설계의 오류가 아니라, 자유로운 인격체를 창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선택의 영역이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문제는 인간이 이 자유를 잘못 사용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세상은 타락하게 되었고, 죄와 고통이 들어오게 됐다.
만약 단순한 실패였다면, 창조주께서는 이 세상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마치 개발자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고 직접 그 안으로 들어가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만화/영화 같은 장명처럼, 하나님은 무너진 세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한가운데로 직접 들어오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속으로 오셔서, 하나님을 떠난 죄의 문제를 우리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셨다.
생명의 근원이시며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주님,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던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피조물의 역사라는 제한된 시공간 속으로 친히 들어오신 그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찬양합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하나님과 끊어졌던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나의 매 순간의 호흡이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이 시간 겸손히 고백합니다. 때로는 삶의 여러 상황 앞에서 흔들릴 때도 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의 섭리를 신뢰할 때 비로소 내 영혼에 참된 평안이 임함을 믿습니다.
주님, 제게 허락하신 삶의 의미를 묵상하며, 세상의 가치에 휩쓸리지 않고, 생명의 주관자이신 주님만을 온전히 예배하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
믿는 자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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