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가 받을 땅은 무엇인가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5 개역개정)
마태복음 5장 5절은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땅'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고 '온유한 자'가 받는 땅이 단순히 이 세상의 땅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오늘은 성경적 관점에서 이 말씀을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약성경 마태복음에 기록된 "온유한 사람이 받게 될 땅"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리적인 땅이 아닙니다. 그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성경에서의 땅의 의미
먼저 성경에서 '땅'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12:7 개역개정)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언약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땅은 단순히 물리적인 소유를 넘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분의 약속을 담고 있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그 땅을 얻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고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일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히브리서 11:13-16 새번역)
히브리서 11장 13-16절을 보면,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더 나은 '하늘의 고향'을 바라보았습니다. 즉, 구약에서의 '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기업, 즉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함'과 '땅'
예수님께서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을 때, 여기서 말하는 '땅'도 단순한 이 세상의 물리적인 땅이 아닙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태복음 11:29-30 개역개정)
예수님 자신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정치적 또는 물리적 영토를 정복하는 방식으로 왕국을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에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은 단순한 이 세상의 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것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의 전체적인 문맥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이 세상의 땅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요한복음 18:36 개역개정)
오히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하나님의 계획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열어주셨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단순히 성품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유함은 막강한 힘을 가진 자들이 아닌,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들이 누리게 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가리킵니다.
기업으로 받게될 땅
성경 안에서 ‘기업’, ‘유업’ 이라는 단어는 모두 '상속'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그렇다면 "온유한 사람이 상속받게 될 땅" 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마태복음 5장 5절에서 말하는 땅은 이 세상의 땅이나 물리적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복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유업으로 받게 될 최종적인 '땅'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요한계시록 21:1)
예수님의 희생을 믿고 예수님의 온유함을 의지하는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기업은 세상에서 잠시 누리다 사라질 유산이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축복입니다.
온유함의 주체: 예수 그리스도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 스스로 온유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민수기를 보면 모세는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온유한 사람이라고 평가되었던 모세는 정작 가나안 땅을 유업(기업)으로 받지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수기 12:3 개역개정)
"네가 비록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맞은편에서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신명기 32:52 개역개정)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본인 스스로를 온유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은 이 세상의 땅을 유업(기업)으로 받은 것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따라서 온유한 자가 받는 땅은 이 세상에서 살아있을 때 받는 땅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온유한 자가 받게될 땅은 반드시 죽어야만 받을 수 있는 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땅이 아니고, 죽어서 받게 될 땅이라면, 그 땅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만 존재하는 땅입니다. 바로 이것이 온유한 자가 받게 될 땅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세상에서 자신 스스로를 온유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죄인들은 온유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땅을 유업(기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유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심으로 죄인들을 그분 안에 품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땅을 유업(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품겨진 사람들, 그분의 십자가 희생의 공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 온유한 자들입니다.
예수님만이 온전한 온유함을 가지고 계셨고, 그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온유함을 의지하는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의 유업, 즉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 나라의 온유한 자
결론적으로, 마태복음 5장 5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한 자가 받을 땅"은 이 세상의 물리적인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어질 영원한 기업을 의미합니다. 온유함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는 자들이 결국 새 하늘과 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질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기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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